우리 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췌장은 소화 효소와 인슐린·글루카곤이란 호르몬을 분비해 혈당을 조절하는 내분비계 장기다. 췌장이 몸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듯, 췌장암도 다른 암과 비교해 특이하고 전형적인 증상이 존재하지 않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동욱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50세 이상의 중년이나 노년의 남성에게 갑자기 당뇨병이 생기거나 살이 빠지면 췌장암을 의심해야 한다"며 "췌장암이 췌장의 머리 쪽에 있는 경우라면 종양이 커지면서 담즙이 나가는 길인 담도(담관)를 막아서 황달이 생기고 반대로 몸통이나 꼬리 쪽에 있으면 복부나 등에 통증이 생기지만 이런 증상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췌장암도 일반적인 암과 마찬가지로 수술이 표준치료다. 암 발생 부위를 포함해 주변 림프절까지 절제하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수술이 가능한 경우가 드물다는 점이다. 췌장암 수술을 위해서는 암이 주위 혈관을 침범하지 않고, 간·폐로 원격전이 되지 않은 1기 또는 2기여야 한다.

또, 수술이 가능해도 췌장 자체가 십이지장과 담도, 담낭, 비장 등 각종 장기에 둘러싸여 있어 암을 제거하기가 상당히 까다롭다. 수술 범위가 넓고 소요 시간이 길어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부담도 큰 편이다.

오 교수는 "췌장암이 무서운 이유는 80~90%의 환자는 수술할 수가 없고 10~20% 정도의 환자만 수술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수술이 어려워도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통해 수술이 가능할 정도로 암 크기를 줄여 수술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만큼 미리부터 치료를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췌장암의 항암 치료는 여러 항암제를 함께 쓰는 복합요법이 발전하며 생존율 향상을 주도하고 있다. 5-플루오로우라실(5-FU)·이리노테칸·류코보린·옥살리플라틴 등의 약제를 합한 폴피리녹스(FOLFIRINOX)와 잼시타빈/아브락산(냅-파클리탁셀)(Gemcitabine/nab-paclitaxel)이 대표적이다. 이어 최근에는 폴리아데노신 디프인산-리보오스 중합효소(PARP) 억제제, 면역항암제 등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특히 폴피리녹스는 전이성, 국소 진행성 췌장암 환자에서 기존 치료 대비 우수한 효과를 입증했다. 메타분석에서 수술 전 폴피리녹스의 보조요법은 경계성 절제 가능 췌장암에서는 68%의 절제율, 84%의 완전절제율, 22.2개월의 생존 기간 연장이 보고됐고 국소 진행성 췌장암에서는 26%의 절제율, 78%의 완전절제율, 24.2개월의 생존 기간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비전이성 췌장암도 폴피리녹스 치료를 먼저 시행해 주변 혈관 침범을 줄인 후 수술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폴피리녹스의 세부 치료 가이드라인을 자체 정립한 류백렬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췌장암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다 보니 대부분 늦게 진단돼 수술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은데, 이번 항암제 치료 가이드라인을 더욱 정교화시킨 결과로 수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췌장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동욱 교수도 "환자 스스로 나이가 많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처음부터 치료를 포기하지 말고 평소 몸이 건강하고 식사를 잘하는 등 건강을 관리했다면 적극적인 치료를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박정렬 기자 jrpark@mkhealt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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